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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전시
49번째 괘 (2020)
호 추 니엔
이 작품에서 작가는 20세기 한국사 전반에서 거듭 발생한 수많은 항쟁을 비롯하여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1980)의 의미를 고찰한다.
작품소개
호 추 니엔
불 위의 연못: 혁(革)의 상이다.
이에 덕을 지닌 자
역사의 질서를 개명하며
시대의 의의를 밝힌다.
— 『주역』, 대상전(大象傳), 49번째 괘
혁명(革命)이라는 단어는 혁(革)과 명(命)의 두 글자로 구성된다. 명(命)은 생명, 운명, 사명을 뜻하며 혁(革)은 변화를 상기시키나, 동시에 유혈 사태의 기운을 띄는 글자이다. 혁의 어원은 벗겨진 동물의 가죽이다. 초기 갑골문(甲骨文)에서 혁(革)은 동물의 머리와 사지, 꼬리와 뿔이 여전히 붙어 있는 상태로 가죽이 벗겨진 이미지를 환기하는 문자로 표기되었다.
혁(革)자가 처음 등장한 곳은 고대 중국 점서이자 만물의 변화 원리를 기술한 주역의 49번째 괘이다. 주역은 한국과 일본, 베트남의 고전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또 역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근대적 의미의 혁명은 영국과 프랑스의 혁명 이후 적용된 의미가 강하게 반영된 일본어(카쿠메이/かくめい )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20세기 한국사 전반에서 거듭 발생한 수많은 항쟁을 비롯하여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1980)의 의미를 고찰한다. 작가는 이러한 항쟁들을 그려낸 다양한 한국 영화의 스틸컷들로 애니메이션 영화의 스토리보드(사전 시각화 작업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시퀀스)를 만들었다.
작가는 ‘아침 이슬의 나라’에 위치한 애니메이션 회사 ‘숨쉬는 스크린 스튜디오’에 스토리보드들을 보냈다.
그들이 처한 맥락에서 보았을 땐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와 직관적으로 관계된 사건들은 표현이 불가능하였고, 이에 따라 작가는 애니메이션팀이 자체 판단에 따라 스토리보드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결과물로 나온 애니메이션에서는 등장 인물들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다. 저항하는 등장 인물들은 가려지고 감춰지고 다른 피부, 다른 가죽에 싸인 모습이다. 또한 스튜디오의 실명과 국가명이 개조되어 사용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백현진과 박민희 등 한국 작가와 뮤지션들이 ‹49번째 괘›의 두 가지 보컬 곡을 제작하며 지정학적 장벽을 넘어 이와 같은 (초현실주의적) ‘우아한 시신’ 게임을 이어간다. 첫 곡은 민요의 한 종류인 노동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으며, 두번째 곡은 가곡의 전통을 기반으로 삼았다. 이 두 곡들은 작품 주제와 콘셉트를 수비학적으로 해석하여 파생시킨 매개변수 속성을 지정하도록 제작된 류한길의 프로그램을 통해 메시(mesh)되는 ‘디지털 오컬트’ 과정을 통해 융합된다.
작가소개
호 추 니엔 (1976~, 싱가포르 출생)
호 추 니엔은 주로 역사적, 철학적 문헌이나 유물에서 시작되는 영화, 설치작품, 퍼포먼스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지역의 흐릿한 경계로부터 파생된 서사를 풀어가는, 진행형의 상위 프로젝트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의 틀 안에서 작가의 최근 작품은 호랑이 인간(‹한 마리 혹은 여러 마리의 호랑이›, 2017), 삼중 스파이(‹이름 없는 것들›, 2015), 변절자(‹불가사의한 라이텍›, 2018) 등 은유적 인물들을 담아낸다. 호 추 니엔은 함부르크 쿤스트페어라인 (2018), 밍 현대미술관(상하이, 2018), 구겐하임 빌바오(2015), DAAD 갤러리(베를린, 2015), 모리 미술관(도쿄, 2012)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2011)에 싱가포르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다. 최근에는 아이치 트리엔날레(2019), 제12회 광주비엔날레(2018)를 비롯해, 독일 세계문화의 집에서의 «두세 마리의 호랑이들»(베를린, 2017)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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